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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예배영상 2020.05.07중등부

 

나는 예배자

 

https://youtu.be/yBDsk-5SEsQ

 

​창조의 목적

​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자유의지를 주셨다. 인간을 '로봇'처럼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존재로 창조하시지 않고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하나님께 받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일삼아왔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통한 참자유를 허락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함"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 즉 인간들과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의지가 없는, 진심이 없는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창세 이래로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중요한 매개 중 하나였고, 오랜 세월동안 어떤 상황속에서도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온전히 드리는, 마음을 다하는 예배가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의 으뜸가는 목적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이사야 43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와 마음, 그리고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창조주이시며, 이스라엘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하신다. '내가 지은 내 백성'이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과 환란에서 '내 백성을 내가'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정체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일깨우신다.

 왜 하나님은 이토록 애절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를 일깨워주실까?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이스라엘은 주변국들로부터 우상숭배에 대한 수맣은 유혹과 도전을 받아왔다. 또한 강대국에 의해 여러 차례 정복 당하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우상숭배를 강요받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은 절대적인 위치에서 상대적인 위치로 평가절하 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도 주변국가들처럼 '바알, 아스다롯, 아세라' 등과 같은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마음은 '내 백성'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 즉 '관계의 회복'을 원하셨다. 그 관계 회복의 자리가 바로 '예배'의 자리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심산과 이스라엘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기 위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기로 하셨다. 얼마 후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이르러 '야곱의 우물'에 앉아서 쉬고 계실 때,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인에게 대화를 시도하셨고 이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 앞에 있는 유대인이 선지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기 민족이 가지고 있는 '예배'에 관한 물음들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었던 예배의 장소에 관한 문제였다. 도대체 어떤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가 사마리아 여인과 그 민족의 오랜 고민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 4:20)

 예수님과 이 여인의 대화에서 표현된 '이 산'은 사마리아 있는 그리심산이다. 바벨론 1차 포로귀환 후, 스룹바벨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할 때 참여 요청을 한 사마리아인의 요구가 거부된 후(스4:1-6 ; 느4:1-2) 사마리아인이 예배첫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리심산에 자기들의 성전을 건축하였고, B.C. 129년 하스모니안 왕조의 힐카누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기도와 예배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그 후로 오랜 기간동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장소의 문제가 늘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가 아닌 예배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서 드려지는 예배나 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 상관없이 온전히 주님만을 위해 드려지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예배의 장소에 예배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였으나 예수님은 장소가 아닌 '영과 진리'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라고 말씀하셨다.

 수백년 동안 논쟁해왔던 예배의 장소에 관한 문제는 더 이상 예배의 핵심이 될 수 없었다. 어떤 장소에서건 형식에만 치우친 예배, 마음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 곧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 진실한 예배가 진짜 예배이다.

 

영과 진리의 예배

 ​영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무엇보다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예배자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함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드리는 예배는 육적인 예배일 뿐 영적인 예배는 될 수 없다. 또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진리의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즉, 영과 진리의 예배란 성령으로 거듭난 예배자가 참진리 되신 예수와 함께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이다.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으시는 이유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기 때문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위해서 예배자들을 찾으신다.

 성경에서 이처럼 명확하게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을 찾으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따라서 '예배자'는 특별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은 바로 이런 '예배자'들과 동역하신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예배자라는 데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러했다. 다윗도 왕의 신분으로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예배한 위대한 예배자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진실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진정한 예배자를 지금도 찾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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