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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예배 영상 2020.11.17중등부

 

 

 

 

내가 그리스도인



https://youtu.be/OCtaB57j820

 

 세상 속에서 신앙 양심 지키기

​ 많은 학생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내적으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교회에서의 삶과 학교에서의 삶이 확연히 다른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교회에서는 착한 학생이지만, 학교나 학원, 가정에서는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믿음대로 생활할 때 때때로 손해를 보게 되거나 놀림을 받게 되거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옳지 않다는 것도 알고, 예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중생활을 하는 것을 예수님이 정말 기뻐하실까? 신앙 양심을 지키면서 살아가면 정말 손해와 따돌림이 뒤따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귀한 특권이다. 이것은 숨기거나 감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밝히 드러내고 믿는 사람이 받는 축복을 통해 복음 전파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던 다니엘과 세 친구의 신앙 양심을 지켰던 이야기는 세상 가운데서 타협하며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놀라운 도전을 줄 것이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먹이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승리를 거둔 후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재물을 탈취했고, 지도층 자녀들인 유대 청년들도 포로로 잡아왔다. 지도층 이민정책을 통해 완벽한 식민지화를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유대 포로 중 박식하고 준수한 소년을 등용하기 위해 감독관 아스부나스에게 잡아온 포로 청년 중 준수한 사람들을 골라서 3년간 훈련을 시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포로 중 뽑힌 청년들은 3년 동안 왕이 먹고 마시는 최상의 음식과 포도주를 대접받고 3년이 지난 후 왕의 앞에서 시중을 들도록 되어 있었다. 그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도 있었다.

 

 ​괜찮습니다

 ​그들 4명은 고향땅에서 잡혀 이 민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들의 이름은 민족 유산을 잘 나타내 준다. 다니엘의 이름 뜻은 '나의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냐는 '여호와는 자비를 베푸셨다', 미사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을까', 아사랴는 '여호와가 도우셨다'라는 뜻이다. 불행하게도 다니엘을 제외하고는 왕의 환관장이 지어준 이방인의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이름이 바뀌었다고 그들의 믿음과 신앙 양심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믿음에 대한 첫 번째 시험은 훈련기간 동안 제공되었던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위배되는 음식 즉, 기름지고 윤기나는 음식들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히브리어 더럽히다'가알'은 신적 모독을 뜻하는 것으로 왕의 진미가 율법의 음식 규례에 어긋나는 피를 뿌려 잡은 고기이거나 부정한 동물의 고기, 혹은 우상에 바쳐졌던 음식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 안에서의 신성함을 더럽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감독자에게 그 음식들을 먹지 않는 대신 채소와 물을 먹고 마시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러나 감독자는 그들이 채식으로 야위게 되면 자신이 책임 추궁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창조적인 대안을 찾아냈다.

 

 ​우리를 시험해보십시오

 ​그들은 감독관에게 이번에는 열흫간만 채소와 물을 먹고, 다른 청년들에 비해 야위었는지를 시험해보고, 만약 다름이 없다면 자기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줄 것을 부탁했다. 그들은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했고, 그들이 신앙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확신했다.

 열흘 후, 감독관이 보니 다니엘과 친구들이 왕이 준 음식을 먹은 동료들보다 훨씬 건강하게 보였다. 약속대로 나머지 훈련 기간 동안 다니엘과 세 친구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 대신 채소와 물을 먹을 수 있었다.

 

 옳은 선택과 하나님이 주신 형통의 복

 ​사람의 생각대로라면, 이들은 굶주리고 야위었으며 다른 청년들보다 부족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삼 년간의 훈련기간이 끝나고 환관장이 그들을 왕 앞으로 데리고 나아갔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는 다른 모든 청년들보다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또한 느부갓네살이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보다 더 왕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왕은 그들을 왕의 고문으로 삼았고, 그들의 지혜가 온 나라 술객보다 십 배나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벨론

 ​다니엘은 오래전에 살았던 인물이고, 바벨론이라는 시대상황도 오늘날의 학생들에게는 생소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야기가 오늘을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본문에 나타나는 몇 가지 단서들을 정리해보자.

 

 1.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을 알고 의지했던 사람들이었다.

 2. 그들은 강제로 가족을 떠나 먼 이방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3.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왕의 명령에 따를 것인가,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따를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4. 그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굳게 설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으로 잘 훈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깊은 영적 자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위협으로부터 그들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지라도 그들은 믿음을 계속해서 재확인하였다. 네 친구들은 서로를 격려하여 동료들과 통치자의 압력에 대항하였다.

마지막으로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5. 그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축복을 주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았던 다른 유대 청년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참여하지 못했다.

 

 ​누구를 기쁘게 할 것인가?

 ​오늘을 살고 있는 청소년들도 같은 도전을 받고 있다. "세상의 요구를 만족시킬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하는 바벨론에 서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일주일에 고작 며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학교나 학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낸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픈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에 대해 배웠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따랐다가 실패하고 손해볼까봐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는 귀한 도전을 준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존귀하게 해주셨기에 오히려 세상 방법에 적응하고 순응했던 사람들보다 더 멋지게 인정받고, 쓰임받는 삶을 살았다. 학생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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